베네수엘라 ‘엘 시스테마’ 교육 받고 인생역전
‘빈민가 소년들의 꿈’ 에딕슨 루이즈 인터뷰


오는 20, 21일 내한공연을 펼치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맨 뒷줄. 자기 키만 한 더블 베이스를 껴안다시피 연주하는 사람들 사이에 23세 난 남미 청년이 있다.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 출신인 에딕슨 루이즈(Edicson Ruiz)다. 수십 년째 세계 정상의 자리를 지키는 이 오케스트라에서 그는 2003년부터 연주를 시작했다. 베를린필 역사상 최연소 입단이다. 하지만 그는 10여 년 전만 해도 도심 빈민가에 위치한 식료품점에서 어머니를 도와 빵과 치즈를 나르던 소년이었다. 그는 어떻게 세계 최고 오케스트라의 단원이 됐을까.

‘시몬 볼리바르’ 오케스트라는 ‘빈민가 오케스트라’에서 시작해 음악계의 명물이 됐다. ‘시몬 볼리바르’ 오케스트라는 ‘빈민가 오케스트라’에서 시작해 음악계의 명물이 됐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최연소 더블 베이스 주자인 에딕슨 루이즈(左) 역시 ‘시몬 볼리바르’ 출신의 파워 넘치는 연주자다. [크레디아,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제공]

◆음악, 빈민가에 희망을 심다=“오늘 저녁은 먹을 수 있을지, 그렇다 해도 내일은 굶지 않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11일 중앙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루이즈는 카라카스에서의 기억을 떠올렸다. “아버지의 얼굴은 일년에 서너 번 볼 수 있었을까. 아주 어렸을 때 집을 떠났죠. 제가 모르는 아버지의 자녀가 예닐곱 명이에요. 도저히 우리를 부양할 수 없었죠.”

친구들은 더 심각했다. “카라카스 중에서도 가장 낙후된 빈민가에 살던 아이들은 총에 맞는 사람들을 목격하며 자라야 했죠. 마약·무기 밀매상과 알코올 중독자가 가득한 도시가 자신이 평생 살아야 할 곳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고 그런 하루하루를 보내던 아홉 살 루이즈에게 어느 날 음악이 운명처럼 다가왔다. “옆집에 사는 분이 인근 오케스트라를 소개해줬어요. 비올라를 배워보라고 했는데 한두 번 연주해보니 고개도 비뚤고 자세가 이상한 거예요. 친구를 끌어안는 것 같은 베이스가 좋겠다고 했죠. 그렇게 우연히 시작된 거예요!”

매일 오후 2시면 식료품점에서 오케스트라 연습실로 가는 것이 그의 일상이 됐다. 하루 네 시간씩 현악기 주자가 모여 연습을 했고 개인 레슨도 받았다. “우리 모두에게 마약 운반이 아닌, 최초의 다른 일상이 시작된 거죠.”

루이즈를 훈련시킨 곳은 ‘엘 시스테마’에서 운영한 125개 오케스트라 중 하나였다. ‘엘 시스테마’는 베네수엘라가 국가 차원에서 1975년 시작한 저소득층 음악 교육 프로그램. 곧 두각을 나타낸 그는 14세 때 각 지역 오케스트라에서 실력이 뛰어난 아이들을 뽑아 만든 ‘시몬 볼리바르’ 오케스트라에 들어갔다. 그리고 ‘시몬 볼리바르’를 통해 베를린필 지휘자 사이먼 래틀과의 만남이 시작됐다. 래틀은 남미 빈민가에 뿌리내리고 꽃을 피우기 시작한 새로운 ‘음악의 희망’에 주목했다. 오케스트라 친구들과 꿈에 부풀어 몇번이고 반복해서 보던 영상 속 베를린필의 오디션을 치를 수 있었던 것도 래틀과의 인연 덕분이다. 이번 내한공연에서도 이틀 동안 소외계층 청소년 800명을 초대해 별도의 콘서트를 여는 래틀은 루이즈의 적극적인 후원자다.

“보통 오케스트라는 100여 명이죠. ‘시몬 볼리바르’ 오케스트라 단원은 이제 300명이 넘어요. ‘시몬 볼리바르A, B로 나눌 정도죠. 얼마나 많은 청소년들의 삶이 바뀌었는지 상상할 수도 없어요.”

베를린에서 6년째 생활하면서 독어·영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게 된 루이즈에게 “오케스트라가 없었으면 지금쯤 어떤 사람이 됐을 것 같으냐”고 물었다. 처음에 “식료품점 점원 또는 축구선수”라고 대답한 그는 이내 “사실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쪽으로 흘러갔을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전통과 미래를 잇다=‘엘 시스테마’ 출신 음악가들은 조국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루이즈는 1년에 꼭 세 번씩 베네수엘라에 돌아가 ‘시몬 볼리바르’와 협연한다.

“제가 유럽에서 배운 것, 베네수엘라를 떠난 후 우리들의 미래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을 저보다 어린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어요. 그저 눈 감고 독일에 있을 수가 없어요.”

루이즈와 비슷한 시기에 ‘시몬 볼리바르’에서 경력을 시작한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27)은 내년부터 LA필하모닉의 상임지휘자로 자리를 옮긴다. 루이즈는 “두다멜 또한 LA필을 맡은 후에도 베네수엘라에 돌아와 계속 연주할 것”이라고 전했다.

루이즈와 두다멜은 두 달 간격으로 한국에 온다. 베를린필의 내한 후 두다멜이 이끄는 ‘시몬 볼리바르’는 12월 14일(서울 예술의전당)과 15일(경기도 성남아트센터) 내한 공연을 연다. 클래식계의 전통과 미래를 상징하는 두 오케스트라에서 베네수엘라 젊은이들이 가교(架橋) 역할을 하는 두 장면을 곧 볼 수 있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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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라 2008/11/13 10:41 modify/delete reply

    멋지다..ㅎㅎ^^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그리고 음악의 힘^ㅡ^/
    공연도 기대된다는..ㅎ

  2. 2008/11/14 11:01 modify/delete reply

    음악의 희망 ^_^!

  3. zerofast 2008/11/15 11:18 modify/delete reply

    대단하심..

  4. 윤슬 2008/11/17 12:32 modify/delete reply

    요거랑 비슷하게 SK에서 해피뮤직스쿨인가 뭐 그런 공헌프로그램 하는 것도 있어요. 아이들을 대상으로 영재음악교육시켜주는.. 이것처럼 대중적으로 확산이 되는 개별 사업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_+

    • 2008/11/20 17:51 modify/delete

      와, 국내에서도 사회공헌 프로그램으로 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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